다음은 한동석 선생의 사주로 작성된 인생그래프입니다. 80세까지 한꺼번에 보기에는 너무 길기 때문에, 4등분으로 잘라서 1등분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자평명리가 제일 잘 맞는 36세와 54세 사이의 한동석 선생의 인생그래프입니다.
이제 인생그래프로 실제 일대기를 비교 분석해 보겠습니다.
1945년 조선민주당 함경남도 조직국장을 역임했습니다.
1946년부터 36세가 시작인데, 정관 하늘색 그래프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기간에 녹색 비견도 발달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비견은 동료, 식신은 아랫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당 활동에서 주변인들의 지지를 동시에 가지고 높은 지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시 이 나이대에서 신강한 사주는 실제와 잘 들어맞습니다.
1950년 6.25 전쟁 직후, 민선 경찰국장을 지내다 월남하여 부산으로 내려옴, 세번째로 재혼하여 1남1녀가 있었음.
1948년 편재가 강하게 들어오고, 1949년 정재가 들어왔으니, 이때쯤 결혼운이 들어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1950년 월남하는 것은 집을 떠나 이동하는 것으로 상관이 와야 하는데, 세운을 분석해서는 알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다만, 하나 추측하자면, 식신은 병화이고, 병화가 강하게 들어오니, 굳이 남과 북으로 나눠서 선택하라고 했다면, 자신에게 들어오는 병화의 기운을 선택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월남을 선택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51년 부산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는 이와 동업하여 진료를 시작함, 네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부인이 출가하여 스님이 됨.
1951 신묘년은 천간에서 정관이 하나 더 들어오고 있고, 을목 속에 갑목이 있어서 힘을 받고 있습니다. 세운을 같이 보면서 해석한다면, 이 시기에 동업자나 사업의 동기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식신이 여전히 작동하므로 (화)기술과 관련한 일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화기술이란, 새끼 손가락을 사용하는 등 소장경과 연결된 부분을 이용하는 것으로 침을 놓는다거나 할 때, 새끼 손가락으로 지지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화기운으로 발달된 손가락을 잘 사용하는 셈입니다. 신금을 이용해서 현침살을 이용한다고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건 직업을 알고 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어째서 이혼을 했는가? 위 그래프 상에서는 찾기 어렵네요.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1952년 부산 영도에서 진료하면서 동양의학전문학원에서 강사로 출강
1952년에 편인이 뜨니 뭔가 전문기술을 공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사로 출강하는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1953년 부산 영도에서 수강생이었던 설태훈 등과 함께 제2회 한의사 국가고시에 응시, 면허 취득 후 , 정식으로 인계한의원 개원
편관이 뜨고, 강한 식신이 들어옵니다. 편관으로 인해 개인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1955~1956년 설태훈 등과 혁학원론의 저자인 한장신 선생에게 주역을 배움
이 시기에 식신이 떨어지니 일하는 것이 조금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역을 배운다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1956년 5번째 결혼. 12월에 상경하여 인사동에서 한동석한의원 개원
편관이 다시 한번 크고 강하게 들어오므로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혼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1960년 동양의약대학에 출강하여 내경을 강의함
강의를 한다는 것은 결국 따르는 아랫사람이 있어야 함으로 식상이 반드시 따라 붙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식신이 따라 붙고 있으니 강의하는 것은 충분히 추정할 수 있습니다.
1963년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정치학사를 편입 수료함. 4월 1일 대한한의학회 초대이사로 임명됨.
53세인데, 정관이 있고 갑자기 늘어난 비견으로 인해서 주변의 사람들로 인해 초대이사로 등극하겠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공부운은 알 수 없습니다.
1965년 이후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석사학위는 받지 못함.
55세가 됩니다. 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하려면 아무래도 인성이 있어야 하는데, 시기적으로 인성이 없는 시기입니다. 석사학위를 받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966년 인사동에서 돈암동으로 이사함. 우주변화의 원리 초판 발행
1965년도에 식상이 커졌는데 이때 책을 썼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1966~1967년 동의수세보원주독 초판 발행, 서서히 자신의 죽음을 예감함
1967년 들어오는 상관이 제법 크게 들어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다른 오행들이 작용하는 것으로 봐서 운과 죽음과의 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1968년 고혈압, 비증, 후두암 등으로 투병함, 뇌졸증으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됨, 생일인 음력 6월 5일(양력 6월 30일)에 자신의 생시인 인시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함.
58세로 이 운의 그래프 상으로는 여전히 운들이 작동하므로, 죽음에 대한 예측이 어렵습니다. 1968년은 무신년으로 인신충이고, 대운이 무자대운이니 자오충 등 2개의 충으로 인해서 운이 줄어들꺼라는 추측은 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6월 5일이면 아직 6월이 안되었으므로, 정사 5월에서 사해충까지 있었기 때문에 여러 충들로 지지가 다 깨져서 다양한 문제가 일어났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자오충(대운)이니 고혈압, 인신충(년도)이니 후두암, 사해충(5월)이니 뇌졸증까지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것은 사후 분석이니까 가능한 것으로, 미래 예측을 하기에는 조금 억지인 부분이 느껴집니다.
어쨋든, 앞서 살펴봤듯이 36세에서 54세 사이는 비교적 잘 맞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나이에서는 어떨까요? 18세에서 36세를 봐야 하는데, 한동석 선생님의 경우에는 갑목이 쌍립이 되어 있고, 갑목이 신강한 편이기 때문에 18세 ~ 36세 사이도 비교적 잘맞게 됩니다. 즉, 월간이 갑목으로 일간과 동일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도 잘맞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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